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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포장하는 천 한 장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요.
우리는 보자기를 흔히 물건을 싸는 도구 정도로 생각합니다. 선물을 감싸고, 도시락을 싸고, 귀한 물건을 보관하는 생활용품. 하지만 정하섭 작가의 그림책 『보자기 한 장』은 그 익숙한 보자기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이 책에서 보자기는 물건을 감싸는 천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감싸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야기는 평생 옷감을 짜 온 한 사람에게서 시작됩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정성과 영혼을 담아 보자기 한 장을 만드는데요. 그렇게 탄생한 보자기는 바람을 타고 세상을 여행합니다. 홀로 살아가는 할머니에게 날아가고, 할머니의 손길을 거쳐 도시에 사는 딸에게, 다시 가족에게 전해집니다. 이후 보자기는 친구들 사이에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망토가 되고, 엄마를 잃은 아이에게는 스카프가 되며,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에게는 목도리가 되고, 모든 것을 잃은 노숙인에게는 따뜻한 이불이 되어주기까지 합니다. 보자기는 단 한마디의 위로도 건네지 않지만, 그 존재만으로 사람들의 상처를 감싸고 다시 일어설 힘을 전합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기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보자기가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세상을 바꾸지는 않아요. 다만 외로운 사람 곁에 머물고, 차가운 어깨를 덮어 주고, 누군가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주죠. 현실에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위로는 거창한 해결책보다 곁에 있어 주는 마음일 때가 많습니다. 『보자기 한 장』은 바로 그 소박하지만 가장 깊은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작가는 보자기라는 전통 생활용품을 통해 한국 문화가 오래도록 간직해 온 ‘정(情)’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풀어냅니다. 예부터 보자기는 귀한 물건을 보호하고 정성을 담아 전달하는 데 쓰였는데요. 혼례 예물도, 명절 선물도, 도시락도 모두 보자기에 싸여 건네졌습니다. 보자기는 단순히 물건을 가리는 천이 아니라 마음을 담는 그릇이었던 것이죠. 오늘날 포장 문화가 화려하게 변했지만, 정성을 담아 무언가를 감싸 전한다는 의미만큼은 여전히 변하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은 바로 그 전통적 의미를 현대적인 이야기로 새롭게 되살렸습니다.
정인성과 천복주 작가의 그림 역시 작품의 감동을 한층 깊게 만듭니다. 부드러운 색감과 따뜻한 질감은 보자기가 품고 있는 온기를 시각적으로 전하고, 특히 보자기가 바람을 타고 사람들에게 날아가는 장면은 현실과 환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화려한 연출보다 여백을 살린 화면은 독자가 인물들의 감정을 오래 바라보게 하고, 그림 속 침묵은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보자기 한 장』은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지만, 읽고 나면 어른들이 더 오래 생각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아이들은 보자기가 변신하는 재미를 발견하고, 어른들은 보자기가 품고 있는 삶의 의미를 읽어 내죠. 그래서 이 책은 세대가 함께 읽을 때 더욱 풍성해집니다. 같은 장면을 바라보면서도 서로 다른 감상을 나누고, 각자가 떠올리는 ‘나만의 보자기’를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은 독자에게 조용한 질문 하나를 남깁니다. “당신에게 보자기 한 장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품일 수도 있고, 오래된 친구의 위로일 수도 있으며, 힘들었던 시절 자신을 일으켜 세운 한 사람의 따뜻한 말일 수도 있겠죠. 결국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보자기에 한 번쯤 감싸였고, 또 누군가를 감싸는 보자기가 되어 왔는지도 모릅니다.
경쟁과 속도가 일상이 된 시대. 서로를 돌아볼 여유를 잃어가는 사회에서 『보자기 한 장』은 가장 평범한 사물 하나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상처 없는 사람은 없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 그래서 이 그림책은 희망을 거창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장의 보자기처럼 누군가를 따뜻하게 덮어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고 속삭이는 듯 합니다.
좋은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어른들에게는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잊고 지냈던 마음을 일깨우기도 해요.『보자기 한 장』은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한 장의 보자기가 건네는 따뜻한 온기는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아,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독자의 마음에 머뭅니다.
이야기씨 김소영 eyaki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