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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아 라일런트가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
어쩌면 우리는 ‘삶’이라는 단어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젊음과 늙음, 시작과 끝…. 인생을 설명하려는 수많은 말들이 있지만, 정작 삶이 무엇인지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미국의 아동문학 작가 신시아 라일런트는 그림책 『삶(Life)』에서 이 거대한 질문에 놀라울 만큼 담백하게 답합니다.
“삶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됩니다.”
2017년 출간된 『삶』은 뉴베리상 수상 작가 신시아 라일런트와 칼데콧 아너상 수상 일러스트레이터 브렌던 웬젤이 함께 만든 그림책입니다. 국내에는 2019년 북극곰에서 번역 출간됐습니다. 이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따라가는 일반적인 그림책과 달리, 코끼리와 새, 고래, 낙타, 토끼 등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삶의 본질을 차분히 들려줍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작은 아기 코끼리. 엄마 곁을 따라 걷는 조그만 코끼리는 햇빛과 달빛을 받으며 조금씩 자라납니다. 이 장면은 특별한 설명 없이도 모든 생명의 출발을 보여줍니다. 사람도, 동물도, 나무도 처음에는 아주 작지만 시간이 흐르며 성장합니다. 작가는 거창한 철학 대신 자연의 질서를 통해 삶의 첫 번째 진실을 말하는데요. 삶은 처음부터 완성된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책은 독자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세상의 모든 동물에게 물어보세요. 삶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는 하늘을 사랑하고, 낙타는 사막을 사랑하며, 거북이는 등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좋아합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환경은 다르지만 모두 자신만의 삶을 사랑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죠.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독자 자신에게 향합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림책은 답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 뿐.
삶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죠. 작가는 짧지만 묵직한 문장 하나를 건넵니다.
“산다는 게 늘 쉽지는 않습니다.”
폭풍우 속을 홀로 날아가는 작은 새는 누구나 한 번쯤 겪는 불안과 외로움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절망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폭풍은 지나가고, 새는 다시 길을 찾아 갑니다. 삶에는 어려운 시간이 있지만 그 또한 삶의 일부이며, 새로운 길은 언제든 다시 열릴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합니다. 인생의 굴곡을 경험한 어른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브렌던 웬젤의 그림은 이러한 메시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강렬한 색채와 생동감 있는 동물들의 표정, 계절과 시간의 변화를 담아낸 풍경은 글보다 먼저 감정을 전달합니다.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고, 섬세하지만 복잡하지 않은 그림은 한 장 한 장을 오래 바라보게 만들어요. 글과 그림이 서로를 설명하기보다 함께 호흡하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합니다.
『삶』은 어른들에게 더 오래 머무는 책이라는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이나 경쟁을 이야기하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오늘 하루가 얼마나 특별한 선물인지를 조용히 일깨워줍니다. 삶은 기쁨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슬픔과 두려움, 성장과 변화까지 모두 품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합니다.
특히 중장년과 노년의 독자에게 이 그림책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시간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젊은 시절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삶이었다면, 인생의 후반부에서는 지나온 시간을 이해하고 오늘을 소중히 살아가는 일이 삶의 중요한 가치가 됩니다. 『삶』은 바로 그 시간을 따뜻하게 응원합니다.
매일 아침 부푼 마음으로 눈을 뜨세요.라며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은 오늘과 다릅니다. 작은 씨앗이 나무가 되고, 아기 코끼리가 어른이 되듯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자라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혼자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책은 몇 장의 그림과 짧은 문장만으로 우리가 잊고 지냈던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나는 지금, 내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림책을 덮는 순간에도 그 질문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습니다.
이야기씨 김소영 eyaki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