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배움터 일성여중고, 어떻게 되나

설립자 별세 후 2028년 폐교 위기…평균 나이 68세 만학도 1000명의 학교

일성예고 옛모습

배움의 기회를 놓친 여성들이 60, 70대에도 책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학교가 있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이야기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2년 만에 이수할 수 있는 이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은 개교 이래 약 6만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대한민국 만학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왔다. 그런데 지금 이 학교가 폐교 위기에 놓였다. 74년을 이어온 배움터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소식에 교육계와 시민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설립자 이선재 교장 별세, 학교 존립 흔들려

지난 5월 10일, 일성여중고를 세우고 이끌어온 이선재 교장이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36년 개성 출신의 실향민인 그는 10대 시절 주변의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간 경험을 토대로, 가난과 전쟁으로 배움을 포기해야 했던 이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뜻을 품었다. 1963년 야학 교사로 시작해 1972년부터 교장직을 맡았고, 1998년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로 등록하며 일성여중고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재학생들은 이튿날 학교에 모여 고인을 추모했다. 평균 나이 68세의 어르신 학생 약 1000명이 재학 중인 이 학교에서, 교장의 빈자리는 단순한 슬픔을 넘어 학교의 앞날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평생교육법의 벽, 법이 발목을 잡다

문제의 핵심은 법이다. 2007년 개정된 평생교육법은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의 설립 주체를 법인으로 제한하고 있다. 개정 이전에 설립된 일성여중고는 이선재 교장 개인 명의로 운영돼 왔는데, 설립자 사망 후에는 그 지위를 누구도 이어받을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학교가 계속 운영되려면 법인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만만치 않다. 교사와 교지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출연재산 기준 10억 원 이상의 현금을 갖춰야 법인 설립이 가능하다. 유족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법인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올해 입학한 학생들이 졸업하는 2028년 2월 이후 일성여중고는 폐교 수순을 밟게 된다.

만학도에게 학교란 무엇인가

일성여중고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다. 이 학교에 다니는 어르신들에게 학교는 삶의 자존감을 되찾는 공간이다. 가난 때문에, 전쟁 때문에, 아니면 결혼과 육아 때문에 배움을 포기해야 했던 세대. 그들이 60, 70, 80대가 되어 교복을 입고 교문을 들어서는 모습은 그 자체로 커다란 울림이다. 매년 이 학교에서는 최고령 수능 응시자가 나온다. 공부하는 데 나이는 없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하는 이들이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제도의 유연성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법과 현실의 간극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짚는다. 법인 설립 요건이 민간의 교육 헌신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공이 손을 내밀거나 법 개정을 통해 유연한 해법을 마련할 수 있다면, 74년의 역사는 이어질 수 있다.

배움에는 나이도, 끝도 없다. 그 믿음 하나로 문을 열었던 일성여중고가 계속 불을 밝힐 수 있을지, 이제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차례다.

일성여중고를 지키려는 국회 청원 동의 링크 ↓ (7월 11일까지)

https://petitions.assembly.go.kr/proceed/registered/5307DFCA1ACF2326E064B49691C6967B

이야기씨 김소영 eyak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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