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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거창한 선물이나 값비싼 장난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자신이 마주한 세상의 질문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털어놓고, 그에 대한 따뜻한 응답을 듣는 과정이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림책 『그레이엄 할아버지께(Dear Graham)』는 편지를 통해 바로 그런 ‘대화’의 마법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편지, 마음과 마음을 잇는 예술의 다리
이 책은 한 아이 잭슨이 옆집의 할아버지인 그레이엄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됩니다. 여덟 살 소년 잭슨은 동네에서 축구하는 걸 제일 좋아하죠. 어느 날 열 번째 골에 성공하려던 순간 공이 그만 옆집 할아버지 정원에 들어가는데요. 잭슨은 장미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할아버지께 사과 편지를 보내고, 며칠 뒤 답장을 받으며 두 사람의 우정은 시작됩니다.
| 잭슨의 편지: “죄송해요. 축구하다가 공이 그만 할아버지 정원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막 열 번째 골을 넣으려던 때였는데요…. 정원의 장미가 무사하면 좋겠어요. 할아버지 드리려고 엄마랑 스콘을 만들었어요. 맛있게 드세요.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해요.”
| 그레이엄 할아버지의 답장: “스콘과 사과 편지 고맙구나. 나도 축구를 좋아했단다. 하지만 너처럼 하루에 열 골을 넣은 적은 없었어. 너는 축구를 정말 잘하는구나! 내 장미는 멀쩡하단다. 걱정하지 말거라. 이번 주말에 우리 집에 와보렴. 새 장미가 잘 자라도록 가지치기하는 것을 보여주마.”
이 작품은 세대와 세대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편지’라는 아날로그적인 통로로 극복합니다. 잭슨은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잭슨에게 글을 띄웁니다.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는 단순히 이웃집 노인이 아니라, 장미를 가꾸는 법을 알려주는 스승이자, 사별의 아픔을 간직한 한 인간으로서 잭슨의 곁에 다가옵니다.
편지는 두 사람만의 비밀스러운 대화이자,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는 방식인데요. 아이는 할아버지를 통해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할아버지는 아이의 생동감을 통해 자신의 정원에 다시금 활기를 되찾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장미’는 단순한 꽃이 아닌, 기억과 사랑을 상징하는 매개체인 것이죠.

이야기의 중반부, 할아버지가 요양원으로 떠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이제 편지는 만남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서로를 기억하기 위한 지표가 되어 줍니다. 할아버지는 끝내 세상을 떠나지만, 그가 잭슨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는 눈물을 자아내는 슬픔을 넘어섭니다.
“장미는 봄이 오면 다시 필 것이며,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이 문장은 상실을 경험한 어린 독자와 어른 독자 모두에게 치유의 언어로 다가옵니다. 작가는 슬픔을 결코 억지로 감추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할아버지가 정성껏 돌보던 장미를 잭슨이 이어받아 가꾸는 행위를 통해, 삶은 계속되고 사랑은 다른 형태로 지속됨을 보여주죠.
『그레이엄 할아버지께』는 2024년 크리스탈 카이트 아너상을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입증했고, 국내에서도 초등 교과서에 수록될 만큼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가장 다정하고 따뜻한 방식으로 풀어냈기 때문이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독자는 잭슨이 흘린 눈물이 결코 슬픔의 흔적만이 아님을 깨닫고, 잭슨이 할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스스로 더 단단한 아이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성장의 자양분을 지켜보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사라져도, 마음속에 심은 사랑의 정원은 계절을 불문하고 언제나 피어있을 것임을요.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그레이엄 할아버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는 추억 속의 선생님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이미 떠나간 가족일 수도 있겠죠. 이 그림책은 당신에게 묻습니다. 지금 당신의 정원에는 어떤 꽃이 피어있느냐고. 그리고 그 꽃을 누구와 함께 가꾸고 있느냐고.
이야기씨 김소영 eyaki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