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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종이 냄새’를 맡으며 활자를 넘길까.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과 누군가 남긴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헌책은 그 자체로 특별한 여행이다. 잠실나루역 인근, 낡은 창고를 변신시켜 만든 국내 최초의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는 바로 그런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보물창고다.
서울책보고는 2019년 3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대형 물류창고를 도시 재생의 관점에서 새롭게 재해석해 탄생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은 마치 거대한 책의 뱃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선형 아치 서가다. 이곳은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로도 유명세를 타며, 이제는 서울을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이자 포토존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곳의 본질은 단순히 ‘사진 찍기 좋은 곳’에 머물지 않는다. 서울책보고는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비롯한 25개 이상의 영세 헌책방들이 위탁 판매하는 12만여 권의 책이 모여 있는 거대한 도서관이다. 이름 없는 중고 서점들을 한데 모아 ‘공유 서가’를 만들었다는 점은, 잊혀가는 헌책방 문화를 보존하고 지역 상권과 상생하는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서울책보고의 책들은 일반적인 대형 서점처럼 깔끔하게 분류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헌책방별로 가지런히 꽂힌 책들은 제각기 다른 서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용객들은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서가를 배회하며 운명적인 한 권을 만난다. 어느 누군가가 밑줄을 그어놓은 문장, 세월의 흔적으로 노랗게 바랜 책장 귀퉁이들은 새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온기를 전달한다. 책을 찾다가 정 어렵다면 내부의 도서 검색대를 활용할 수 있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 대부분은 검색기 앞보다는 서가 사이를 거닐며 우연히 마주치는 제목들에 더 큰 흥미를 느낀다.
서울책보고는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주기적으로 기획 전시를 열고, 작가와의 북 토크, 독립출판물 소개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퇴근길, 혹은 한가한 주말 오후에 들러 책 한 권을 읽으며 여유를 찾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도시 속의 작은 안식처가 되어준다.
운영 시간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 토요일과 일요일 및 공휴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관일이니 방문 계획이 있다면 미리 확인해야 한다.
서울책보고는 화려하고 빠르게 변하는 서울의 풍경 속에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낡은 책 한 권이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영감을 건네는 곳. 이번 주말, 지하철 2호선 잠실나루역을 내려 시간의 켜가 쌓인 책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보물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곳에는 디지털은 절대 복제할 수 없는, 시간의 울림이 있다.
이야기씨 김소영 eyaki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