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 한복판에 ‘실버핫플’

‘지챠바챠’ 구글이미지

평균 연령 73세, 정년 넘긴 어르신들이 만드는 새로운 노동의 풍경
도쿄 시부야는 일본 유행의 최전선으로 통하는 거리다. 인스타그램 감성의 디저트 가게와 트렌디한 카페들이 매달 새로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는 이곳에서, 최근 가장 화제가 되는 공간은 의외로 새로운 디저트 가게도 감성 카페도 아니다. 지난 3월 문을 연 테이크아웃 찻집 ‘지챠바챠(G-CHA&Ba-CHA)’다.

이곳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73세, 최고령 직원은 80세다. 일본 사회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고령화 문제를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부야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할아버지·할머니가 만드는 한 잔, 이름부터 다르다
카페 이름 ‘지챠바챠’는 일본어로 할아버지를 뜻하는 ‘지이짱’과 할머니를 뜻하는 ‘바아짱’에 차(Tea)를 합친 언어유희다. 이름처럼 직원 전원이 정년을 넘긴 어르신들로 구성돼 있다. 선글라스를 쓴 채 손님을 맞이하고, 찻집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저마다의 개성대로 소화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지챠바챠’ 구글이미지


이곳의 진짜 매력은 메뉴판이 아니라 카운터 너머에서 시작된다. 음료가 완성돼 번호가 불리면 손님은 가림막 커튼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그 순간 아늑한 일본식 분위기의 공간이 펼쳐지고 할아버지·할머니 스태프들이 환한 미소로 맞이한다. 이들은 손님의 이름을 손글씨로 적은 라벨을 컵에 붙여 건네며 자연스럽게 취미나 일상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가 시작되는 셈이다.


고민도 나누고, 손주처럼 일손도 돕고
방문객들은 직원들과 자신의 고민을 나누며 위로와 격려를 얻기도 한다. 언어 장벽이 있는 외국인 관광객과도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매장 내에는 손님이 직원과 함께 사진을 찍거나, 바쁜 시간대에 일손을 거든 손님에게 감사의 의미로 무료 음료를 제공하는 ‘손주 시스템’ 같은 독특한 장치도 마련돼 있다. 일반적인 카페에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느긋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공간 전체를 감싼다.


“피곤하면 즉시 말하기”…어르신을 위한 일터 설계
지챠바챠가 단순한 이색 카페로 그치지 않는 이유는 운영 철학에 있다. 어르신들이 무리하지 않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매장 구조부터 다시 설계했다. 서서 일하는 대신 카운터에 앉아 주문을 받고 서빙할 수 있게 했고, 주문은 말이 아닌 체크리스트 기입 방식을 택했다. 결제는 현금 없이 캐시리스로만 진행해 업무 부담을 최소화했다.


직원 우선 원칙도 명확하다. “피곤하면 즉시 말하기”, “쉬고 싶을 때 쉬기”, “즐겁기 때문에 일하기”라는 세 가지 규칙이 노동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이 원칙에 따라 때로는 직원 전원이 동시에 휴식을 취하면서 서비스가 잠시 중단되기도 한다. 매출이나 효율보다 직원의 건강과 즐거움을 우선하는 구조다.


무얼 마실까, 어디로 갈까
메뉴는 생강 호지차, 자스민 녹차 등 어르신들의 이름을 딴 테마 음료가 중심이다. 말차 아이스크림도 인기다. 매장은 시부야역에서 도보 약 2분 거리인 시부야 1-12-24, 707 시부야 빌딩 1층에 있다. 운영 시간은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지만, 직원들의 컨디션에 따라 유동적으로 운영될 수 있어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하다.


젊은이들의 거리로 불리는 시부야 한복판에서, 어르신들이 만들어내는 느긋함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빠르게 흘러가는 도쿄 여행 중 잠시 숨을 고르고 싶다면, 차 한 잔과 함께 따뜻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곳이 좋은 쉼표가 되어줄 것이다.

이야기씨 김소영 eyak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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